반면 준비되지 않은 자에겐 한없이 잉여롭고 무의미하다. 겨울의 해는 터무니 없이 짧은데다 공기는 너무 시려서 어딘가라도 들어가지 않고는 누구를 만나기도 어렵다. 늦은 밤까지 나란히 벤치에 드러누워 마음 놓고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부릴 수도 없다. 뿔뿔이 흩어진 인연들을 되찾기엔 왠지 어색한 시점이고, 익숙한 인연과 무작정 시간을 달래기엔 짐짓 귀찮기도 하다. 여행을 꿈꾸기엔 당장에 가진 것이 없어 두렵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기엔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어 불안하다.
차라리 여름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시큼한 땀이 가슴팍을 적셔버릴 만큼 뜨겁고 습한 여름. 여름은 모든 것이 만들어지고 무르익는 계절이니까.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고, 아무 것도 익숙하지 않은 시기이니까. 모든 것이 'ing'인 여름에는 누구도 자신의 길이 옳고 그른지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지금의 스스로를 쉽게 회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설익은 인연들이 가장 열심히 싸워대는 것도, 결국은 마음을 나눌 진짜 친구로 거듭나게끔 하는 것도 여름이다. 사람과 삶과 세상에 대해서 가장 열심히 배우는 것도, 가장 많은 것을 배우는 것도 여름이다. 게다가 이 여름의 성숙에는 별다른 준비가 필요하지도 않다. 풍부한 볕이 선사하는 뜨거운 열정과 티셔츠 한 장, 공기에 가득찬 매미 울음의 설렘이면 충분하다.
그렇지만 대학의 여름은 이미 사라지고 있다. 사랑과 관계와 교양에 대한 내면의 갈망들이 이젠 드러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스펙'의 추구로 변한지 오래다. 사람들은 이제 행위의 결과가 나에게 이익이 될 거라는 확신이 없으면 뛰어들지도 않는다. 사람과 삶과 세상에 대해 최소한의 통찰조차 하지 못하면서 회의만하기 바쁘다. 또 누군가가 죽도록 밉다고 해도 그 서러움에 내가 우는 법이 없으며, 누군가가 좋아도 나부터 희생할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나를 내던져 한여름 여행길에 동참하기보다 찐득한 땀이 몸에 베인다고, 찝찝하다고 불평부터 한다.
그 여름을 꿈꾸는 자, 아직 덜 익었다고 생각하는 자, 이젠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래서 문득 외로워졌다. 더 외로워졌기에, 나는 더욱 찬란히 뜨겁게 빛나는 여름을 꿈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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