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꿈꾸는 건 2011/03/04 00:33 by 구루마

겨울은 아무래도 무언가 따뜻할 거리가 준비 되어 있어야 하는 계절이다. 노란빛이 새어 나오는 평온한 집, 적당히 두툼하면서도 패셔너블한 몇 겹의 옷가지, 눈 쌓인 거리를 함께 걸을 애인, 뜨거운 국물에 소주 한 잔 기울일 친한 친구들, 분명하고 튼실한 내년의 진로 정도는 갖추어져야 비로소 나의 겨울임을 자처할 수 있다. 그래서 겨울은 준비된 자에겐 충분히 포근하고 낭만적이다.

반면 준비되지 않은 자에겐 한없이 잉여롭고 무의미하다. 겨울의 해는 터무니 없이 짧은데다 공기는 너무 시려서 어딘가라도 들어가지 않고는 누구를 만나기도 어렵다. 늦은 밤까지 나란히 벤치에 드러누워 마음 놓고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부릴 수도 없다. 뿔뿔이 흩어진 인연들을 되찾기엔 왠지 어색한 시점이고, 익숙한 인연과 무작정 시간을 달래기엔 짐짓 귀찮기도 하다. 여행을 꿈꾸기엔 당장에 가진 것이 없어 두렵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기엔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어 불안하다.

차라리 여름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시큼한 땀이 가슴팍을 적셔버릴 만큼 뜨겁고 습한 여름. 여름은 모든 것이 만들어지고 무르익는 계절이니까.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고, 아무 것도 익숙하지 않은 시기이니까. 모든 것이 'ing'인 여름에는 누구도 자신의 길이 옳고 그른지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지금의 스스로를 쉽게 회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설익은 인연들이 가장 열심히 싸워대는 것도, 결국은 마음을 나눌 진짜 친구로 거듭나게끔 하는 것도 여름이다. 사람과 삶과 세상에 대해서 가장 열심히 배우는 것도, 가장 많은 것을 배우는 것도 여름이다. 게다가 이 여름의 성숙에는 별다른 준비가 필요하지도 않다. 풍부한 볕이 선사하는 뜨거운 열정과 티셔츠 한 장, 공기에 가득찬 매미 울음의 설렘이면 충분하다.

그렇지만 대학의 여름은 이미 사라지고 있다. 사랑과 관계와 교양에 대한 내면의 갈망들이 이젠 드러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스펙'의 추구로 변한지 오래다. 사람들은 이제 행위의 결과가 나에게 이익이 될 거라는 확신이 없으면 뛰어들지도 않는다. 사람과 삶과 세상에 대해 최소한의 통찰조차 하지 못하면서 회의만하기 바쁘다. 또 누군가가 죽도록 밉다고 해도 그 서러움에 내가 우는 법이 없으며, 누군가가 좋아도 나부터 희생할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나를 내던져 한여름 여행길에 동참하기보다 찐득한 땀이 몸에 베인다고, 찝찝하다고 불평부터 한다.

그 여름을 꿈꾸는 자, 아직 덜 익었다고 생각하는 자, 이젠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래서 문득 외로워졌다. 더 외로워졌기에, 나는 더욱 찬란히 뜨겁게 빛나는 여름을 꿈꾸게 되었다.

이렇게 살아요 어쩌면 마지막 눈 2011/02/17 03:45 by 구루마

덜떨어진 청소년기를 보낸 업보가 이제서야 들이닥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빵꾸난 학점과 F로 가득한 성적표가 나라는 사람의 퀄리티를 증명하는 것 같아서 씁쓸해졌다. 유급신청을 할까, 싶었지만 몇 개의 B+가 새삼 아까워져 그것도 이내 그만두었다. 자식을 타지에 보낸 부모님을, 확인 전화 한 통으로 깊이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쇄약해진 아버지는 쓰러지며 부딪힌 상처로 콧등에 진물이 고여 있었다. 항생제도 제대로 바르지 않은 터였다. 그리고 나는 거금을 들여 그저 불편할 뿐인 콧등을 수술하기로 했다. 그런 아버지를 앞에 두고 나는, 이번에 올라가는 게 마지막이어서 내려오지 않을지도 모르니 이런저런 잡다한 가재도구를 다 챙겨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버지는 그러라고 했고, 뒷바라지를 마저 다 해줄 것이니 공부에 전념하라고 했다. 적막, 그리고 바라본 창밖에선, 거의 다 저물어 버린 겨울이 기력을 다해 싸락눈을 짜내고 있었다.

어쩌면 그 눈이 올 겨울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첫눈의 기쁨은 한껏 즐겼으면서도 마지막 눈을 차마 제때 기념하거나 아쉬워하지 못했다. 내가 '사라짐'의 아쉬움에 둔감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버지는 이미 늙었고, 마지막 기력을 다해 나를 감싸안고 있었다.

사람과 세상 요즘 뉴스를 보면서… 2011/02/04 06:29 by 구루마

1. 중학교 때 도시락 반찬 때문에 싸운 적이 있다. 내 반찬을 다른 놈들이 다 뺐어 먹어서 열이 한참 받쳐 있는 상황에 어떤 놈이 와서 김 한 조각을 가져가는 바람에 참지 못하고 녀석에게 주먹을 날렸었다. 김 한 조각 때문이라니, 후훗.

2. 그런 점에서 민노당 이숙정 시의원의 '행패'와 그 변명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약소정당에 대한 비웃음, 무시, 경멸이 축적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엄한 데서 분노의 임계점을 넘어설 수도 있는 거다. 허나 자기 대접 받자고 시의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천 번 만 번 욕을 먹어도 싸다. 다만 분명히 해야할 것은, 이 문제가 정당 또는 이념의 문제라기보다는 순전히 개인의 품성과 자질에 관련한 문제라는 사실이다. 정당 전체, 또는 진보의 이념을 향한 비난의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3. 이집트의 시민 혁명이 머지 않았다. 미국까지 사실상 시민의 편을 들었기에 머지 않아 시민들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집트의 기존 정치 상황이 어떠하였고, 무라바크는 어떤 대통령이며, 무엇이 시민들을 분노하게 했는지 난 지금도 정확히 알기 어렵다. 언론이 제대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이집트 데모 사태로 삼성과 LG의 매출이 급감하였다는 내용이라든가, 세계 경제에 어떻게 타격이 된다든가 하는 보도는 다수의 매체에서 보도되었다. 어떤 개념을 갖고 살아가야 그런 기사를 쓰고, 또 읽을 수 있는지 의심스러워졌다. 참말로 미친 세상이다.

4. 충남대 과회장의 새터비 사건이 화제다. 참여하지 않으면 아싸 대접을 받을 것이니 새터를 가지 않을 사람들도 돈을 내라는 과회장의 언질은 당연히 부당하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사태가 확대되는 느낌. 사실 문제의 본질은 과회장의 어설픈 수사에 있다고 본다. 신년 과회비로 2만원씩을 걷고 새터비로 참가자에 한해 2만 5천원씩 걷었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을, 굳이 아싸니 어쩌니 해버려서. 과학도시가 표심잡기용이었다는, 대통령의 격에 안 맞는 수준 이하 수사를 보여준 MB 꼴이 된 모양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왜 충남대생들이 부끄러워해야 하고, 왜 다른 이들은 충남대생을 싸잡아 비하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잔인한 학벌 문제의 본질은 대학의 서열화 그 자체가 아니라, 한 개인의 존재 자체를 대학의 이름에 투영시켜 바라보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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